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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수정일13.12.03 / 1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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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년 00월 00일 0요일 오늘은 주말을 이용하여 답사가기로 결정 했다. 답사 장소는 평소에 생각해 두었던 삼양동에 위치한 선사 유적지이다. 이 곳은 내가 어렸을 적에 자랐던 곳이고 동네 친구들과 말썽도 많이 피고 온갖 놀이를 다 해본 추억이 있는 곳이다. 그 때는 지금만큼 개발이 안되어 있고 주변이 온통 밭과 들판이여서 우리에게는 더없이 좋은 놀이터 장소였다. 실제로 동네친구들과 물이 안고인 큰 웅덩이에 나무와 볏집 등을 가지고 일명 우리 나름의 "본부"라는 명칭을 가지고 우리만의 정말 안락하고 편안한 공간 또는 영역을 가지는 움집을 만들면서 놀기도 하였다.
내가 처음 접한 것은 선사인들의 생활터전인 움집이었다. 생각보다 크기가 작은 움집을 보다 처음 놀라고 실제와 같은 사람모형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랐다. 집은 대부분 땅이나 조개 더미를 30cm~100cm 정도 파고 지은 추위를 피하기에 적합한 반 지하 형태의 움집이었다. 이러한 움집에서 가족단위의 공동체 생활을 하기 시작하였다.
다음은 어로생활과 음식문화, 가족문화, 동구 사용, 농경문화, 수협활동, 혼례문화, 주거문화 등을 하나씩 훑어봤다. 선사시대의 의생활은 실을 뽑을 수 있는 방추차가 발명되면서 직물로 된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방추차는 흙을 빚어 가운데 구멍을 둟은 것으로 가늘고 긴 실을 뽑아 낼 수 있었다. 이를 이용해 실을 뽑아 만든 천과 동물의 뼈를 깎아 만든 뼈바늘을 사용하여 옷을 만들어 입었으며, 옥환을 비롯한 각종의 장신구들을 사용하였고, 어로생활은 정착지의 마을 부근에는 대개 강이나 바다가 있었고, 기후의 변화와 함께 찾아 온 풍부한 조개류와 물고기들은 인류가 정착생활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을 준거 같다. 이러한 방법으로 고기잡이, 농경과 목축 등 식량 획득의 방법이 늘고, 조리법과 저장법의 획기적인 발달로 사람들의 영양 상태가 좋아졌을 것이다. 가족은 핵가족 단위로 화덕 주위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하고 잠을 잤으며, 토기를 빚으며 가정 생활을 꾸려 나갔을 것이다. 농경문화는 밭에다 불을 질러 나무와 풀이 타고 남은 재는 자연적인 거름이 되어 땅을 기름지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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