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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수정일13.03.01 / 13.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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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대의 회화를 대충 살펴보면 송시대 양식의 계승과 그 반동으로 볼 수 있는 문인화의 발흥이라 할 수 있겠다. 원나라는 광대한 판도를 영유하여 동 ·서의 교통은 활발하게 되었으나, 위정자들이 회화에 마음을 쓸 여유가 없어서인지 화가의 대부분이 송나라를 계승한 한민족의 피를 이었으나, 송나라 때와 같은 화원 제도는 설치하지 않았다.
이 밖에 화조화를 잘 그린 전선이 있다. 그는 사생을 중시한 송나라의 원체풍과 같이 장식적인 화면의 구성이나 채색을 연구하여 일가를 이루었고, 그의 화풍은 명나라의 화조화에 계승되었다.
수 ·당의 뒤를 이어 오대에서 송 · 원나라에 이르는 동안 조각은 쇠미의 내리막길만 걸어 특히 원나라 때는 그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떨어졌다. 다만 새로 들어왔던 라마교에서 불교와는 다른 조각작품을 남긴 것이 주목을 받을 정도이다.
회화는 명대에 들어 급속히 복고운동이 진전되어 원대에 폐지된 화원을 재건하여 궁중화가를 양성하고 화가를 우대하여 작품활동도 활기를 띠었다. 특히 선덕제 이후 많은 유명화가가 활약하여 마원 계통의 예단, 하규 계통의 주문정, 후에 절파의 개조가 된 대진 및 이재 등이 당시의 화단을 주도하였다. 절파의 화풍은 마원 ·하규의 송나라 원체화에다 원나라 초에 화승들이 즐겨 그린 수묵체를 배합한 거친 필법으로 다룬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용이 빈약하고 형식에 치우쳐 퇴색하였다.
한편 당초에는 화원의 후원자였던 명나라의 황제들은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고 화가의 자유를 속박하였기 때문에 화가의 활약도 점차 침체되었다. 이러한 화원의 어용화가와는 달리 재야의 화가들이 점차 두각을 나타내 명대의 화단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는데 그 중 손꼽히는 화가는 구영이다. 그는 남송화원의 화가 진각을 개조로 하는 원파에 속하여 그 정통화풍을 계승하면서도 이당 ·마원 ·하규와 문인화가인 심주의 그림양식을 배합하여 원파의 영역을 벗어나 일가를 이루었다.
재야 화가 속에서 문인화가 크게 발흥한 것도 이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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