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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수정일12.06.20 / 12.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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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우암 송시열은 누구인가?
본론2.우암 송시열의 연보
3.우암 송시열의 작품
4.우암사적공원의 건물들
결론
5.느낀점
6.출처
1.우암 송시열은 누구인가?
이름 : 송시열(宋時烈)
호 : 우암(尤庵)
출생 : 1607년 (선조 40)
사망 : 1689년 (숙종 15)
관직 : 문신출신으로 1658년 효종의
간곡한 부탁으로 이조판서의
직책을 맡았다.
-뇌물과 벼슬을 멀리하고 올바른 정치와 학문을 중요시 하였으며 그 당시에 수많은 문인들을 제자로 가르쳤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은 자신을 시기하는 세력에 의해서 사약을 마시는 것으로 좋은 끝은 아니었다.
2.우암 송시열의 연보
1세 - 11월 신축일 옥천군 구릉촌에서 태어났다.
12세 - 율곡의 격몽요결은 배웠는데 송시열 선생은 이 책을 다 배우고 “이 글처럼 하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25세 - 주자(朱子)의 글을 읽으며 행동과 규식을 한결같이 그의 법대로 준행했다.
26세 - 동춘이 함께 살자고 요청하여 회덕의 송촌으로 이사했다.
27세 - 9월 생원(生員)시험에 장원으로 합격하였다.
29세 - 효종의 사부가 되었다.
30세 - 겨울에 북쪽에 오랑캐가 갑자기 밀려오자 집을 떠나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36세 - 윤휴의 이기설(理氣說)을 변론했다.
41세 - 비래암에 들어가 제자들과 학문을 강론하였다.
44세 - 11월 동춘과 율곡선생의 연보를 교정하였다.
50세 - 3월 23일 아버지와 어머니의 묘를 8대 조부 쌍청공의 묘소 아래에 영구히 안장하였다.
52세 - 9월 19일 이조판서로 승진하였고 12월에 임금께서 모피를 하사하였다.
65세 - 우의정에 제수되나 사직상소를 올렸다.
83세 - 장희빈의 아들이 세자로 책봉되는 것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다 제주도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그리고 6월 서울로 압송되어 오던 중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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